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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

(1) 설립

1) 거란과 여진의 침입으로 국가재정의 결핍을 겪게 되자 국자감은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2) 최충의 문헌공도: 문종 9(1055) 문하시중(수상)으로 퇴임한 최충이 사숙을 개설하자 국자감에 실망하고 있던 과거응시생들은 여기로 몰려 들었다.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어 9재로 나누었는데, 이에 근거하여 이 사숙은 9재학당이라고도 불렸다.

3) 12공도: 최충의 9재학당이 명성을 떨치자 퇴직관료들이 사숙을 설립하여 그 수가 11개에 달하였다. 이들을 최충의 사숙과 합해 12공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2) 12도의 성격

1) 12도는 과거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과거예비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2) 이들 12도는 도제관계로 결속되어 다른 도로 옮기면 과거응시자격이 박탈될 정도였다.

3) 12도의 설립자가 과거시험관인 지공거를 지낸 고위관료들이었으며, 12도의 선생은 그 도출신의 과거급제자가 맡았다.

4) 그리하여 12도를 중심으로 과거시험관(座主 또는 恩門)과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門生)사이에 부자관계와 같은 좌주문생(座主門生)관계가 맺어져 파당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3) 교육방법

1) 하과(夏課): 매년 9재의 학도들이 사원의 승방을 빌려 하는 하기강습회와 같은 것으로 일종의 특별과외였다.

2) 각촉부시(刻燭賦詩): 초가 타기 전에 시를 짓는 속성 시짓기시험으로 모의과거시험이었다.

 

2. 서당

1) 서당은 양반 자제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 자제들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실시한 초등교육기관으로 그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 정확한 사료가 없어 고려의 서당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마을단위의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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