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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사23

조선교육의 특징

 

 

 

 

 

1. 조선 교육정책의 방향

1) 관학의 정비와 부흥 : 조선인 인재의 육성과 백성의 교화를 중앙에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이의 부속기관 격인 중등수준의 4학을 설립하고, 지방에는 각 행정단위에 329개의 향교를 설치하였다.

2) 교화정책

소학과 주자가례의 중시 : 교화는 사회에 유교적 예속(禮俗)을 정착시켜 사회의 기강을 세우려는 국가 중심의 사회지배형태로, 이로 인해 실천적인 유교규범을 담고 있는소학(小學)과 유교적 의례가 담겨 있는주자가례(朱子家禮)가 중시되었다.

향사(享祀)의 강화 : 관학인 성균관과 향교에 문묘를 두고 향사(享祀)라고 불리는 각종 의례행사를 거행하였으며, 향교의 주요 기능을 향촌사회의 교화에 두었다.

 

2. 소학의 중시

1) 소학은 남송대의 주자가 편집한 초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리학의 입문서다.

2) 소학은 실제적인 처방이 결여되어 있는 효경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지침들로 구성되어 있어 중시되었다.

3) 소학은 향교, 4, 서원, 서당의 필수과목이었으며, 향교와 4학에서 성균관으로 올라가는 승보시의 필수과목이기도 했다.

4) 권근은 권학사목에서 모든 경전의 학습에 앞서 소학을 읽어야 한다는 소학선강’(小學先講)의 원칙을 내세웠다.

 

3. 조선의 교육과 현대공교육제도의 비교

구분

조선의 교육

현대 공교육제도

교육의 주도

국가

국가

교육비 부담

고등교육의 교육비

국가 부담

기본적으로 초등교육비 국가부담

(중학교의 의무교육도 일부 실시)

교육 대상

원칙적으로 양반

전국민

정규의 교육과정

존재

존재

위계에 의한

학교제도

중등과 고등교육만 연계

중등고등교육이 연계됨

전문적 교사

존재

존재

 

한국교육사24

조선의 교육적 인간상 - 선비

 

 

 

 

 

1. 선비의 의미

1) 순수한 한국말인 선비는 한자어의 와 같은 뜻을 갖는다.

2) ‘선비혹은 는 학식과 덕성을 갖춘 인격의 소유자로,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군자를 뜻한다.

3) 선비란 특정 분야의 전문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경전에 밝고 행실을 닦아 도덕을 겸비해서 스승이 될만한 자였다.

4) 이는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가 크게 무르익은 사람인 대장부와 같다.

 

2. 선비의 특성-도덕적 기품

1) 선비정신은 일차적으로 도덕적 기품에 있다.

2) 선비는 유교적 도덕규범을 실천하면서 일반민중에게 모범을 보이고 또한 교화시키는 임무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3) 이러한 선비의 도덕적 기상은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가 구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선비의 역할

1) 선비는 자신이 쌓은 덕을 사회 속에서 실현시키기 위해(治人) 관직으로 나아간다.

2) 그러므로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부와 가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3) 관직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펴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는다.

4) 관직을 얻지 못하면 학문에 정진하여 후생을 많이 가르치고 바른 도리를 제시하여 민중을 교화한다.

5) ‘한 시대에 나가서 도를 시행하고(行道一世)’, ‘말씀을 내려주어 후세에 가르침을 베푸는 일(立言垂後)’는 선비가 지향하는 두 가지의 기본방향이다.

 

 

 

한국교육사25

조선의 관학(1) - 성균관

 

 

 

 

 

1 성균관의 설립목적

1) 성리학의 연구와 보급 : 성균관은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지배층의 교양과 사회적 습속을 바꾸기 위해 성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 사회지도자의 양성(成人材) :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은 장차 국가를 이끌고 갈 사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이는 고급 정치 관료의 양성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3) 유교적 대의명분의 선양(明人倫) : 성균관은 국가의 유교적 대의명분을 선양하고 유교적 예속을 확산시키기 위해 석전제로 불리우는 각종의 의례행사를 개최하였다.

 

2 성균관의 구조

1) 문묘 : 문묘는 대성전과 동무, 서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곳에는 공자를 위시하여 유학의 발전에 기여한 선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2) 학교 : 학교는 유학의 경전을 강의하는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3. 성균관의 교관직제

1) 지사(2)에서 학유(9)에 이르기까지 모두 3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 이들은 성균관 유생 교육외에도 종학의 교육과 4학 유생의 교육도 맡는 일종의 겸임교관이었다.

 

4. 성균관의 입학자격

1) 성균관은 관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지배계층인 양반의 자제들 중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자에게 입학 자격이 주어졌다.

2) 성균관 입학시험인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을 원칙으로 하되, 4학의 유생 중 성적 우수자를 시험을 거쳐 선발하였으며, 현직관리 중에서도 참상, 참외관은 시험없이 선발했다.

3) 생원, 진사로서 정규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을 상재생(上齋生)이라고 하고, 그 외의 재학생을 하재생(下齋生)이라고 하여 엄격히 구분하였다.

 

5. 성균관의 생활

1) 향사(享祀): 주로 문묘에서 이루어지는 각종의 의례행사이다.

2) 경학(經學)과 강학(講學): 학교의 활동은 사서와 오경으로 대표되는 유학의 기본경전을 학습하는 경학과 여러 가지 문예적인 형식의 연습을 하는 강학으로 되어 있었다.

 

6. 성균관 유생의 활동

1) 성균관 교육은 100% 무상이었으며 국가는 유생들에게 기숙사, 식사를 제공하고 공부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무상으로 지급했다.

2) 또한 이들은 군역, 부역 등 각종 잡역을 면제받았으며, 과거시험에도 여러 특전을 받았다.

3) 유생들의 생활은 학령을 기본 규범으로 하여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4) 엄격한 생활 규칙에 매여 있던 성균관 유생들은 자치회를 구성하여 자율적인 생활을 영위했다.

5) 자치회인 재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성균관의 공론으로 되어 어떠한 외부 간섭에도 굴복하지 않고 지켜졌다.

6) 만약 그 결정이 지켜지지 않으면 유생들은 유소(상소), 권당(식당에 들어가지 않는 것), 공관(성균관을 떠나는 것) 등의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했다.

 

 

7. 수학기간과 원점제도

1) 성균관의 수학기간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2) 그러나 정규 과거시험인 문과(대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곳에서 일정기간 수학을 해야 하는 원점제도’(圓點制度)가 있었기 때문에 1년 정도는 머무르며 수학해야 했다.

 

8 성균관의 교육과정

1) 45경의 중시: 조선에서는 경학에 밝고 행실을 수양한 선비’(經明行修之士)를 교육적 인간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4(대학, 논어, 맹자, 중용)5(예기, 춘추, 시전, 서전, 주역)을 가장 중요시했다.

2) 잡서의 금지: 경전의 학습에 있어서 주자의 주석이 표준적인 해석으로 전제되었기 때문에 성리학적 유학 이외의 다른 학풍과 서적들은 철저하게 금해졌다.

3) 제술(製述): 성균관에서의 제술은 사서의, 오경의, , , , 책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4) 교육과정의 운영: 4서와 5경의 9(九齋)의 제도를 마련하여, 대학재논어재맹자재중용재예기재춘추재시재서재역재의 차례대로 이수하도록 하였다.

 

9. 성균관의 교육방법- 강의(講儀)

1) 강의는 성균관, 향교, 서원 등 당시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널리 행해졌던 교육방법의 하나로, 배운 글을 목청을 높여 읽고 문장의 자세한 뜻과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이치를 문답으로 풀어 가는 문답식 교수학습 방법이다.

2) 강은 암송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암송한 글의 문리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3) 그래서 암송한 뒤에 전개되는 문답식 교수방법은 기계적인 암기에 그치기 쉬운 학습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며, 개별적능력별 수업을 가능하게 하고 인격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10. 성균관의 재정

1) 성균관의 재정은 국가에서 지급한 전답, 노비, 어장, 그리고 수시로 지급되는 현물로 되어 있었으며,

2) 성균관 재정의 운영은 성균관 내에 설치된 양현고(養賢庫)에서 담당하였다. 양현고는 유생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경비를 지출하고 감독하였다.

 

 

 

 

한국교육사26

조선의 관학(2) - 4

 

 

 

 

 

1. 4학의 설립

1) 고려말기 신유학으로서의 주자학이 수용되면서 이를 교육하고 보급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존의 동서학당을 5부학당으로 개편했다.

2) 이러한 노력이 조선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이어져 서울의 하위 행정구역인 오부에 각기 학당을 건립하고자 하였지만 여의치 못하자 순차적으로 동학, 서학, 남학, 중학의 4학을 설립하게 된다.

3) 성균관의 예비학교의 성격을 지녔던 4학은 독자적인 프로그램과 역할을 가지지 못해 그 운영은 부진했다.

 

2. 4학의 성격

1) 중등 수준의 관학 : 4학은 서울에 설치된 중등 수준의 관학(국립학교)으로 서울이나 주변 지역의 사대부층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취학생의 거주지에 엄격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

2) 문묘가 없는 관학 : 4학은 성균관이나 향교와는 달리 문묘가 없는 순수 교육기관이었다.

3) 성균관의 예비학교

4학은 성균관 예비학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4학의 성적 우수자는 승보시를 거쳐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4학의 교관은 성균관의 교관 중에서 임명하였는데, 이는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종합적으로 교관을 확보하여 하급 교육기관인 사학에 충원함으로써 교육의 일관성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4학 교육의 일관성을 위해 4학교관 구임법을 제정하여 교관의 임기에 제한을 두었다. 4학의 교관으로 임명을 받으면 30개월을 근무해야만 타지로 옮길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3) 과거 준비학교

성균관의 부속기관으로 독자적인 프로그램과 역할을 지니고 있지 못했던 4학은 과거준비학교의 성격을 띠어 갔다.

4학에서 수학할 경우 과거에서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17세기를 지나면서 상설 운영되는 학교로서의 역할보다 서울 지역의 유생들이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반드시 적을 두어야 하는 서울의 향교와 같은 성격으로 변모해 갔다.

 

3. 4학의 교육내용

1) 4학 유생들의 교재는 소학을 비롯하여 효경, 사서, 오경, 문공가례집, 문선 등이었으며,

2) 이중에 소학은 4학 유생들의 필수과목이었다.

 

 

한국교육사27

조선의 관학(3) - 향교

 

 

 

 

 

1. 향교의 설립과 전개

1) 조선은 유교이념에 따라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고려후기 향촌사회에 점차로 설치되기 시작한 향교를 전국적으로 보급했다.

2) 국가는 군, 현으로 대표되는 전국의 329개 단위 행정구역에 향교를 하나씩 설립했다.

3) 향교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지대하여 수령칠사라는 지방관의 일곱 가지 주요 직무 가운데 수명학교(修明學敎)’라는 조목을 두어 향교를 감독하고 학교교육을 진흥하도록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장학에 해당된다.

 

2. 향교의 설립목적

1) 지방민의 교화 : 주자학을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은 불교에 젖어 있던 일반 서민을 교화하기 위해 전국의 행정구역에 향교를 설치했다.

2) 통치 체제에 필요한 관료자원의 확보 : 지방에 설치된 중등 수준의 향교는 양반사족으로 대표되는 향촌사회의 인재를 국가의 이념을 교육하여 통치체제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3. 향교의 구조와 조직

1) 구조 : 향교는 크게 문묘와 학교로 구성되어 있다. 성균관에 비해 그 규모만 작을 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행사는 성균관과 거의 유사했다.

2) 교관 : 향교의 교관으로는 교수관(6품 이상)과 훈도관(7품 이하)이 있었으며, 유자격 교관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여 생원이나 진사를 파견할 경우 교도라고 불렀다.

4. 향교의 입학자격과 학생

1) 입학자격 : 향교의 입학자격에 신분에 대한 법적 규제는 없었으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양반과 양인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2) 입학절차 : 향교 교생 10인의 추천과 소학을 시험하여 입학을 허가하였다.

3) 향교생의 특전 : 향교의 교생은 군역을 면제받았으며,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은 자는 생원진사시의 초시를 면제받았다.

4) 향교의 실제 교생 : 향교의 실제 교생들은 군역을 면제받으려는 평민자제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양반의 자제들이 시설과 선생의 질이 떨어지는 향교를 기피하여 학적만 보유한 비정규생으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 향교의 교과

1) 향교의 교과는 소학, 사서, 오경, 성리대전, 근사록, 삼강행실 등의 경전과 통감, 송원절요 등의 역사서, 향약, 가례 등이었다.

2) 이중에서도 소학은 특별히 중시되었다.

 

6. 향교의 성격 변화

1) 교육기능이 평가에만 국한: 조선 후기로 갈수록 향교의 학교기능이 약화되고, 석전행사 뒤에 모인 생도들에게 시험을 보는(춘추강회) 평가기능에만 국한되게 되었다.

2) 양사재(養士齋)의 운영: 향교의 교육기능이 평가에만 국한되자, 조선 후기 각 향교에서는 양사재라고 하는 별도의 교육기구를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양사재는 향교의 재정과는 별도로, 설립 당시 모금한 기금으로 운영되었다.

 

7. 향교의 사회적 기능

1) 이념적 국가기구: 인재의 육성과 지방민의 교화라는 목적으로 설립된 향교는 학교의 기능과 이념적 국가기구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2) 향촌에 유교적 습속의 보급: 문묘에서 석전제를 위시한 각종의 유교적 의례행사를 치러, 향촌사회에 유학의 이념을 보급하는 한편 그것에 입각한 사회풍속을 세우고자 했다.

3) 향촌사회의 향풍진작: ‘유덕자를 받들며 연장자를 높이고, 유교적 예의를 확립한다,’(尙有德 尊長年 興禮讓)는 이념에 입각하여, 향사례(鄕射禮), 향음주례(鄕飮酒禮), 양노례(養老禮) 등의 행사와 향약을 주관하여 향촌사회의 향풍진작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교육사28

조선의 잡학교육

 

 

 

 

 

1. 고려의 잡학교육

1)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기 전인 고려시대에는 잡학교육이 정규적인 관학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국립대학이었던 국자감에 율학, 서학, 산학이라는 기술과를 두어 교육했다.

2) 이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잡학이 유학에 비해 심하게 차별되지 않았으며, 교육의 전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3) 고려시대에는 잡학교육과 더불어 잡과라는 기술학 과목의 과거시험이 시행되고 있었다.

 

2. 조선 잡학교육

1) 조선시대 잡학의 분야: 잡학에는 역학(譯學), 의학(醫學), 음양학(陰陽學), 산학(算學), 율학(律學), 화학(畵學), 도학(道學), 악학(樂學) 등이 있었다.

2) 잡학의 교육: 생도의 교육은 중앙은 해당 부서에서, 지방은 지방 관아에서 전문서와 경서, 경국대전을 배웠고 매일고사와 월별고사를 실시하여 관리로서의 발탁시 자료로 삼았다.

3) 잡학생의 배경: 잡학생은 양반의 2품 이상관의 서얼이나 중인이 주를 이루었다. 잡학생이 모자랄 경우에는 향교에서 뽑아 올리기도 했으며, 도학, 화악, 악학에는 천인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4) 잡학의 위상: 조선 초기 잡학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잡학 출신들에게 높은 지위와 소득이 주어지지 않아 조선시대 내내 잡학교육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한국교육사29

조선의 과거제도

 

 

 

 

 

1. 생원진사시(소과)

1) 생원진사시의 성격 : 생원진사시는 문과에 대한 예비시험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원진사시를 거쳐 성균관에 일정기간 수학을 한 후 문과에 응시하는 것이 관직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2) 생원진사시 합격자의 대우 : 생원과 진사에게는 성균관의 정식 입학 자격이 주어졌으며, 하급관료에 충원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3) 시험의 회수 : 생원진사시는 초시, 회시 두 단계의 시험을 치렀다.

4) 시험의 내용

생원시 : 유학의 경전에 대한 이해 정도를 논술을 통해 시험했다.

진사시 : , 부와 같은 문예 창작의 재능을 시험하였다.

5) 응시자격의 제한 : 원칙적으로 양인이상이었으나. 서얼의 자자손손, 두 번 이상 시집간 사람의 아들과 손자, 향리의 세 아들 중 하나를 제외한 두 아들은 응시할 수 없었다.

 

2. 문과(대과)

1) 선발방침 : 문과는 실무적으로 유능한 행정관료를 선발하는 제도가 아니라, 유학의 이념과 원칙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이에 투철한 사명의식을 지닌 사람을 선발하고자 한 제도이다.

2) 3단계시험 : 문과는 초시, 회시, 전시라는 3단계의 시험을 통해 3년마다 33명을 선발했다.

3) 시험방식

초시와 회시는 초장, 중장, 종장이라는 세 차례의 시험을 거친다.

초장: 유학의 경전 즉 사서와 오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 정도를 시험

중장: , , , , , 전과 같은 문예적 소양을 시험

종장: 책이라는 논술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식견을 평가

초시초장의 시험방식: 조선 초기 문과의 초시 초장의 시험방식을 구술시험 형식인 강경(講經)으로 할 것인가, 작문시험 방식인 제술(製述)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성종대에 이르러 제술로 결정이 되었다.

4) 응시자격 : 생원진사로서 원칙적으로 성균관에서 300일 이상 공부한 자, 경향유생 및 통훈대부(3품 당하관) 이하의 문관이다.

 

3. 무과

1) 3단계시험

무과는 중견 무관 후보를 선발하는 시험으로 초시, 회시, 전시의 3단계를 거쳐 3년마다 28명을 선발하였다.

초시와 전시에서는 무예에 대한 실기를 시험했고, 회시에서는 유학의 경전과 무경의 일부에 대한 지식을 구두시험으로 평가하였다.

 

2) 무과의 시험과목

무과의 시험과목은 강서(講書)와 무예(武藝)의 두 가지가 있었다.

강서는 45경 중 하나, 무경 7서 중 하나, 경국대전 등을 다루었다.

3) 응시자격 : 무관 자제들이 원칙이나 향리나 양인으로서 무경무예에 소질이 있는 자도 응시할 수 있었다.

 

 

4 잡과

1) 잡과의 분야: 잡과는 전문기술 인력인 중견 기술관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으로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의 네 분야가 있었다.

2) 2단계시험

잡과는 초시, 회시 2단계의 시험으로 선발했다.

초시는 해당관청에서, 복시는 예조에서 실시했다.

3) 잡과의 시험과목

잡과의 시험과목에는 강서(講書), 사자(寫字), 역어(譯語), ()이 있었다.

강서는 전문과목에 해당하는 책을 강독하는 것이고, 사자는 외국어를 베껴 쓰는 것이고, 역어는 외국어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한국교육사30

조선의 서당

 

 

 

 

 

1 서당의 형성

1) 양반자제 뿐 아니라 일반 서민의 자제에게까지 문자교육과 초보적인 수준의 유학 입문교육을 하는 사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 고려시대에 어느 정도 일반화되기 시작한 서당은 조선 중, 후기를 거치면서 보급이 확대되어 갔다.

 

2 서당의 변화

1) 서재(書齋) 서당: 조선 초기 초등교육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곳이었던 서재에서 주로 담당하였다.

2) 향촌(鄕村)서당으로 발전: 16세기 서당은 향촌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명문 사족출신인 대토지 소유자의 주도로 향촌단위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3) 개량서당화: 18세기 후반 경영형 부농과 상인, 수공업자들과 같은 일반 서민이 서당을 설립하기 시작하자 서당은 개량화되어 갔다.

4) 서당 교육내용의 변화: 기존의 서당과는 달리 개량서당에서는 충효중심의 윤리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담은 교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장혼의 아희원람이 대표적인 것이다.

5) 민족사학으로의 발전: 이렇게 서민들에 의해 개량되기 시작한 서당은 민족사학으로도 발전해 나갔는데, 최초의 근대적 민족사학인 원산학사(1883)도 개량서당이 발전한 것이다.

6) 근대학교적 성격: 개량화되기 시작한 서당이 개화기와 일제 초기 근대학교의 성격을 띠어 가자, 일제는 서당규칙(1918)을 만들어 이를 탄압했다.

<아희원람(兒戱原覽)>

1. 중인 출신의 장혼이 편찬한 서당교육용 교재로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2. 주요내용

1) 화식, 의복, 옥려, 궁실, 경운, 관혼상제, 식기, 제기 등 일상사와 관련된 내용

2) 설화, 민담, 신화 등의 내용

3) 답교놀이, 관등행사, 씨름, 제기차기, 널뛰기, 약밥 등의 민속

 

3. 서당의 구성과 교육내용

1) 구성

서당은 훈장과 접장 그리고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접장: 학생들이 많을 경우 연령이 많고 학력이 우수한 자를 선발하여 학생들의 교육을 돕도록 했는데 이를 접장이라고 한다.

2) 교육내용

서당의 교육내용은 훈장의 학식 정도에 따라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천자문』『동몽선습』『소학』『통감등을 가르치고, 사서삼경』『사기』『당송문등을 교재로 하여 강독하고, 오언절구나 율시 등을 제술하도록 하였다.

3) 교육방법

경전을 암송하고 난 후 문답을 통해 문리를 깨치도록 했으며, 개인의 능력에 맞게 학업속도에 차이를 두었다.

계절에 따라 교과목을 조절하여 여름에는 시와 율을 짓고, 봄과 가을에는 사기와 고문을 읽게 하며, 겨울에는 경서를 공부하도록 했다.

 

4. 서당의 특징

1) 자유로운 형태의 교육기관: 서당은 소규모로 운영되는 교육기관으로 설립이 자유롭고, 퇴학이 자유로우며 학습기간도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이었다.

2) 훈장 1인 교육 : 서당은 1인의 교사(훈장)가 여러 과목을 지도하는 형태였다.

3) 개별 학습 형태 : 학생의 개인차를 인정해서 학생의 능력에 따라 학습진도가 결정되는 개별 학습 형태였다.

4) 접장제도의 활용 : 간혹 아동이 많을 경우 나이가 많고 우수한 아동을 접장으로 뽑아 대신 가르치게 했다.

 

5. 서당교육 확대의 의미

1) 유교적 사회문화 질서의 유지

서당교육에서 담당한 유교적 지식은 관례화된 생활습속의 체득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유교적 교양을 쌓는 일은 기존의 가치체계와 사회질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서당교육의 보급을 통한 유교적 지식의 확산은 기존의 사회문화의 질서가 확보되고 유지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2) 사회변동의 가속화 요인

서당교육의 확대는 유교적 사회문화질서의 유지라는 기능 이외에도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양반층에 의해 독점되어 있던 유교적 지식이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대됨으로써 우선 당시의 사회신분제도를 떠받치고 있던 기초가 동요하게 된다.

즉 서당교육의 보급이 피지배층으로서의 일반 민의 사회적 의식을 높여, 사회변동을 가속화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6. 서당교육의 현대적 시사점

1) 개별화 교육: 학생의 능력에 맞게 학업속도에 차이를 둔 개별화 교육은, 지금의 초등교육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개별교육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무학년제: 서당에서는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책을 읽게 했으며 진전이 빠른 학생은 수시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했는데, 이는 일종의 무학년제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육사31

조선의 서원

 

 

 

 

 

1. 서원의 등장

1) 조선 건국이래 서울과 향촌에서 성장해 오던 유학지식인들이 지식인사회(사림)을 형성하기 시작하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서원이다.

2) 조선의 최초 서원인 백운동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에 의해 고려말 성리학의 도입에 공헌을 한 안향을 배향하기 위한 사묘(祠廟)1543년 설립되었다.

3) 국가에 공이 있는 인물이나 선현을 모시는 사묘의 부수기구로 출발한 서원은 관학이 침체되자 학교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

 

2 학교적 성격으로의 발전

1) 학교로서의 성장에는 퇴계 이황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였다. 퇴계는 관학이 학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하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구로 서원을 주목했다.

2) 그래서 백운동서원의 국가적 공인(사액)을 요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편액과 유학의 경전을 하사받았다. 이것이 서원에 대한 국가의 최초의 사액이었다.

3) 교육과 학문연구를 위한 기구로 정착된 서원은 사림계열의 관료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자 전국에 걸쳐 본격적인 발전을 맞게 된다.

3 서원의 변질

1) 17세기 이후 동족의식과 붕당의식을 조장하기 위해 남설되기 시작한 서원은 교육기관이기보다는 사림들의 권익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사회기구로 변모해 갔다.

2) 서원이 사림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기구로 변질되어 민폐를 끼치게 되자 국가의 적극적인 통제를 받게 되어, 조선말 대원군에 의해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폐되고 만다.

 

4. 서원의 구성과 교육내용

1) 서원의 구성: 서원은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사우(祠宇)와 강학소인 서재, 혹은 정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2) 서원의 교육내용: 서원의 교육내용은 사서오경을 기본으로 하되 소학가례를 매우 중시했다.

3) 서원의 수준: 서원의 수준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4) 서원의 학생: 서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생원, 진사가 우선 이었으며, 초시합격자나 향학열이 뛰어난 자는 유림의 승인을 받아 입학시켰다.

5) 서원의 교육방법: 서원의 교육방법에는 법성현을 받드는 향사(享祀), 주어진 글을 읽고 질의 응답하는 강(), 마음을 다스리는 정좌법(靜坐法) 등이 있었다.

 

 

 

한국교육사32

실학(實學)의 의의

 

 

 

 

 

1. 실학의 의의

1) 실학이란 조선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 개혁적인 사상이다.

2) 초기는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전개되었지만, 경제, 산업, 제도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합리성을 도입하면서 성리학의 철학체계에서 이탈하여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2. 실학의 사회적 배경

1) 조선왕조의 중기에 접어든 17세기에는 여러 가지 부문에서 사회적 혼란이 나타나고 있었다.

2) 기존의 붕당정치와 세도정치의 전개로 정치는 파행을 걷고 있었으며, 지주제의 심화와 상업의 발달로 인해 농촌사회는 분해되고 있었다.

3) 이러한 사회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학문적, 실천적 과제로 인식하여 그것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비판적 유학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실학사상이다.

 

3. 실학의 학문적 배경

1) 양명학: 양명학은 성리학의 절대적 권위를 상대화하고 실천적 사고의 가치를 인식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2) 서학: 서양의 과학과 기독교사상을 담고 있는 서학은 과학의 실증적인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평등사상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 고증학: 고증학은 경전에 대한 성리학적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실증적인 입장에서 경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4. 실학의 유형

1)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 이익과 유형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인계의 학파로, 국가사회를 질서있게 운영하고, 현실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중시하여, 토지제도나 행정기구와 같은 제도상의 개혁을 겨냥했다.

2)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학파로,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학문의 목적으로 삼고 상품의 유통과 생산기구의 개발 등 기술적 혁신에 주력했다.

3) 실사구시학파(實事求是學派): 김정희를 중심으로 일가를 이룬 학파로, 청 나라에서 발전된 고증학을 수용하여 경서, 금석, 전고 등의 고증에 체계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글자 일자일구(一字一句)에서 정확성을 찾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을 적용하였다.

 

5. 실학파의 학풍

1)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경국제민(經國濟民): 실학자들은 실천적 학문이란 백성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이롭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용후생을 중시하며, 바른 제도와 정책을 통해 국가사회를 질서있게 운영하여 국민을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는 경국제민을 표방한다.

2) 한국학의 연구: 실학파는 낙토조선(樂土朝鮮)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의 실정을 조사, 연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실학자들은 한국의 역사와 지리, 물산풍토를 연구제목으로 하는 국학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3) 북학론(北學論): 실학파는 한국의 실정을 연구 조사하는 동시에 외국의 제도문물과 학술 중에서 우리 것보다 우수하고 진보한 것이 있으면 받아들이고자 했다.

 

 

 

한국교육사33

실학자들의 교육사상

 

 

 

 

 

1. 반계 유형원(16221673)의 교육사상

1) 평등관: 유형원은 나면서부터 귀한 자는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신분의 차등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신분과 직업의 세습제를 철폐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2) 교육의 기회균등: 그는 교육이 신분의 높고 낮음보다는 각자가 지닌 능력이나 연령 등에 따라 실시되어야 하며, 학교의 입학대상을 평민의 자제들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하여 교육의 기회균등을 주장했다.

3) 과거제의 폐지와 공거제(貢擧制)의 실시: 유형원은 본래의 의의를 잃고 있는 과거제를 전면 폐지하고, 학교교육과 인재의 선발을 연계시켜, 학교교육을 통하여 드러나는 개인의 덕행과 도예를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공거제를 제안했다.

4) 3단계 단선형 학교체제: 유형원은 서울은 방상-사학-중학-태학으로, 지방은 향상-읍학-영학-태학으로 연결되는 3단계 체제를 제시했다.

5) 기술교육과 실업교육의 중시: 유형원은 잡학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계승자를 확보하고 질 높은 전수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성호 이익(16811763)의 교육사상

1) 치용(致用)의 강조: 경학을 공부하는 것은 치용(治用)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여 치용을 강조했다. 그래서 예를 배우는 것도 사회생활이나 외교활동에서 실질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2) 탐구심의 중시: 이익은 탐구심을 계발하여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탐구심을 중시했다. 매일 새롭게(日新), 스승을 구하고(得師), 호기심을 가지고 즐겨 질문하는 것(好問)이 참다운 살아 있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3) 한국사의 중시: 그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고 조선현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여, 교육과정에 동국사, 퇴계집등을 포함시켜 중국의 경전 위주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

4) 과천합일(科薦合一)의 실시: 과거제의 폐단과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 과거제의 일부를 수정하고 천거제(薦擧制)를 병용하자는 과천합일(科薦合一)을 내세웠다.

3. 담헌 홍대용(17311783)의 교육사상

1) 교육체제: 홍대용은 임하경론에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전국을 9도로 나누고 ----으로 연결되는 행정조직을 두되, 각 도로부터 면까지 각급 교육기관을 창설할 것을 제안했다.

2) 의무교육주창: 면에는 를 두어 8세 이상의 전 아동을 수용하여 교육해야 하며 초등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여 의무교육을 주창했다. 그러나, 교육대상을 천인층에까지 확대한 것은 아니므로 완전한 현대적 의무교육이라고 볼 수는 없다.

3) 능력주의의 표방: 홍대용은 재능과 학문이 없으면 재상의 아들이라도 천한 신분으로 돌아가 한이 될 것이 없다고 하여 능력주의를 표방했으며, 이를 통한 사회적 기회의 개방을 강조했다.

4) 공거제: 인재를 학교에서 배양하고 그 성과에 입각해서 추천하는 방법을 과거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4. 다산 정약용(17621863)의 교육사상

1) 자율적 인간관: 다산은 인간의 심성이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형성된다고 보았다. ,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2) 치인(治人)의 재해석: 정약용은 치인(治人)을 재해석하여, 치인을 정치적 지배행위가 아니라 교육적 행위의 일종으로 파악했다. 치인은 인도적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며, 모든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도덕적 관계의 실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3) 교육적 인간상으로서의 수기위천하인(修己爲天下人): 인간은 자기 수양에 의해 능력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도 실용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 재건주의가 내세우는 사회적 자아실현과 유사한 개념이다.

4) 경험을 통한 학습의 강조: 다산은 경험을 통해 관념적 내용을 다루는 학습방법을 중시한다. 우리가 사물을 통해 관념적인 것을 다루게 되듯이 학습도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5) 아학편 이천자문의 편찬: 다산은 천자문의 문자구성이 비교육적이고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읽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아학편을 편찬했다.

6) 교육개혁론: 다산은 --라는 새로운 행정조직을 제시하고 이 행정조직에 따라 학교가 체계화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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